도시를 식물의 장소로 이해하기

식물학은 보통 사람이 사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오지, 자연 지역, 농촌에서 자라는 식물을 대상으로 해왔다. 알렉산더 훔볼트는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바다 건너 안데스 산맥을 넘었다. 그가 살던 베를린에도 수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었지만 도시의 식물은 단지 잡초였을뿐 식물학의 궤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베를린의 식물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식물과는 크게 관계 없어 보이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베를린은 무려 도시의 60%가 파괴되었다. 폭격의 잔해속에서 참담한 비극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시민과 달리, 식물은 파괴된 자리를 무성하게 채워나갔다. 다른 우연한 정치적이고 지리적인 사건이 식물에게 유래 없는 관심을 집중시켰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는데,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갈라지게 된다. 베를린은 서 베를린은 동독의 한가운데 외딴 섬이 되어버렸다. 시골로, 숲으로 조사와 채집을 나서던 서베를린의 식물학자들도 섬같은 서독의 수도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예전 처럼 자유롭게 도시를 떠날 수 없게 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스레 도시의 식물을 살펴보게 되었다.

 허버트 수콥 Herbert Sukopp 교수가 당시 그런 식물학자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시의 식물이 단지 특정한 장소의 식물이 아닌, 어떤 과정의 식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전후 베를린에 번성한 식물들은 베를린이라는 특정한 장소의 식물이라기 보다는 전쟁과 근대화라는 과정에 속한 식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장소에서 과정으로 관점을 옮기면, 우리 주변의 식물들도 새롭게 보인다. 다른 어느 곳 보다도 도시에서 번성하는 식물종들, 예를 들면 환삼 덩굴이나 도시에 가장 흔한 잡초들을 도시화의 식물들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학자가 사회 사회관계를 통해, 또 도시학자가 도시형태의 구조를 통해 도시를 이해하듯이 우리도 그 안에 자라는 식물을 살펴 보며 도시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를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