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식물의 장소로 이해하기
식물학은 보통 사람이 사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오지, 자연 지역, 농촌에서 자라는 식물을 대상으로 해왔다. 알렉산더 훔볼트는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바다 건너 안데스 산맥을 넘었다. 그가 살던 베를린에도 수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었지만 도시의 식물은 단지 잡초였을뿐 식물학의 궤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베를린의 식물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식물과는 크게 관계 없어 보이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베를린은 무려 도시의 60%가 파괴되었다. 폭격의 잔해속에서 참담한 비극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시민과 달리, 식물은 파괴된 자리를 무성하게 채워나갔다. 다른 우연한 정치적이고 지리적인 사건이 식물에게 유래 없는 관심을 집중시켰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는데,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갈라지게 된다. 베를린은 서 베를린은 동독의 한가운데 외딴 섬이 되어버렸다. 시골로, 숲으로 조사와 채집을 나서던 서베를린의 식물학자들도 섬같은 서독의 수도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예전 처럼 자유롭게 도시를 떠날 수 없게 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스레 도시의 식물을 살펴보게 되었다. 허버트 수콥 Herbert Sukopp 교수가 당시 그런 식물학자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시의 식물이 단지 특정한 장소의 식물이 아닌, 어떤 과정의 식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전후 베를린에 번성한 식물들은 베를린이라는 특정한 장소의 식물이라기 보다는 전쟁과 근대화라는 과정에 속한 식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장소에서 과정으로 관점을 옮기면, 우리 주변의 식물들도 새롭게 보인다. 다른 어느 곳 보다도 도시에서 번성하는 식물종들, 예를 들면 환삼 덩굴이나 도시에 가장 흔한 잡초들을 도시화의 식물들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학자가 사회 사회관계를 통해, 또 도시학자가 도시형태의 구조를 통해 도시를 이해하듯이 우리도 그 안에 자라는 식물을 살펴 보며 도시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를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렘 콜하스의 항복: “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야”
레옹 아우콕 광장의 사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라는 단순한 선택을 할 수 있던 것은 어찌 보면 꽤 드문 경우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건물이나 시설이 필요해서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무언가를 그대로 간직하고 또 보존하기 위해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지어야 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이대로도 좋은 것을 간직하고 더 잘 사용하기 위해서 보존 계획이나, 도시 재생 계획, 커뮤니티 계획같은 것들이 종종 필요하다. 하지만 아름답고 근사한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마음먹고 계획한 대로 우리 곁에 호락호락 남아주지 않는다. 또 계획이란 얼마나 잘 틀어지는지. 하루의 작은 계획도 바뀌기 일쑤인데, 건물이나 마을, 도시 전체를 위한 오랜 시간의 계획쯤이야. 라카통바살의 광장 설계로부터 10년 전, 1987년에 파리 근교의 신도시를 계획하는 공모전에 참가하는 렘 콜하스의 마음도 아마 이러한 이유로 복잡했을 것이다. 믈렁 Melun 과 세나르 Senart라는 파리 남쪽에 위치한 지역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이를 그대로 둔다면 아마 마구잡이로 개발되어 금세 특성 없는 그렇고 그런 근교가 되어버릴 터였다. 그러니 신도시를 짓기 위한 마스터 플랜의 목표는 동네가 무분별하게 도시화하며 성장하는 것을 막고 필요한 기반 시설과 고유한 정체성을 갖춘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 평화로운 농촌 마을과 아름다운 숲을 마주한 렘 콜하스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이유야 어쨌든 어떤 식의 개발도 이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해칠 터였다. 후에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 쓴 <항복> Surrender라는 글은 푸르른 대지를 담은 항공사진과 함께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곳에 도시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은 모욕적일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It was heartbreaking, if not obscene … to have to imagine here, a city.” S,M,L,XL (1995)에 실린 Surrender.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점에서 다가오는 세기말을 앞두고 우리 시대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 렘 콜하스는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져만 가는 현대 도시는 이미 완전히 통제를 벗어난 듯 했고 건축과 도시를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순진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건축가란 이미 실패한 직업이었다. ‘지어진 것’ (the built), 즉 도시와 건축은 정치나 경제 상황, 인구의 증가, 이런저런 집단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예측할 수 없는 말썽거리였고, 이는 믈렁-세나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어떻게 지을지 아무리 계획한다 해도, 마구잡이로 지어지는 건물과 자라나는 도시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실패할 계획을 세우며 이런 혼란과 불확실성에 무의미하게 저항하기보단 그냥 차라리 확실하게 ‘항복’하는게 낫지 않을까? 이런 항복은 왠지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야. 인생은 계획대로 안되거든. 계획은 세워봤자 틀어지기만 해. 계획이 없으면 틀어질 일도 없고. 무슨 일이 닥쳐도 아무렇지 않지.” 하지만 렘 콜하스의 항복은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의 초점을 옮기는, 말하자면 전략적인 항복이었다. 렘콜하스가 보기에 어떤 공간이 삼차원적으로 어떻게 채워지고 지어질지 계획하고 통제하는 것에 비하면, 어떤 공간이 그냥 비어있도록 지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보였다. 그렇다면 어차피 실패할 ‘어디에 무엇을 지을까’를 계획하지 말고 차라리 ‘어디에 짓지 않을까’를 계획하면 어떨까? 그리고 나서 이렇게 ‘짓지 않기로 정한 공간’이 확실히 비어 있을 수 있도록 개발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면 도시가 마구잡이로 지어져도 도시의 기능이나 경관을 어느 정도는 보증할 수 있지 않을까? 비워져 있는 공간은 건축으로 채워진 공간이 절대로 성취하지 못할 확실성, 일관성,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을 도시에 줄 터였다. 또한 이런 빈 공간은 계획하거나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용도나 필요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렘 콜하스는 건축에 반대되는 ‘빈 공간’ 보이드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85년에 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상상하기” Imagining Nothingness 라는 제목의 글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나 가능하다.건축이 있는 곳에는 (그 외에)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Where there is nothing, everything is possible.Where there is architecture, nothing (else) is possible.” 믈렁-세나르 계획은 이렇게 항복함으로 건축가가 무엇을 어떻게 지을지 계획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포기하고, ‘짓지 않는 것’ 그리고 ‘비워두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느 도시에나 보이드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믈렁 세나르 계획에서는 이런 빈 공간 – 보이드가 단지 건물이 지어지고 남은 부분이 아닌 도시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가장 먼저 계획된다. 렘 콜하스는 그 동네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개발 가능성에 따라 세심하게 보이드가 되어야 할 지역을 정했는데, 이런 보이드에는 인근의 숲을 보호하고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곳, 교통 완충 지대, 도시의 중심축이 될 공원, 앞으로 캠퍼스가 들어설 공간 등을 포함하였다. 그리고 이 보이드를 제외하고 섬처럼 남은 나머지 부분은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는 도시의 변화와 확대에 ‘항복’하는 것이 도시계획의 골자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이 건축의 ‘섬’들은 일관적 큰 그림 없이 개별적으로 또 무작위적으로 개발되겠지만 도시를 관통하는 보이드는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고 매력을 더하는 도시의 중심축이 될 터였다. Melun-Senart 도시 계획. 일반적인 다이어그램과 달리 검은색이 비워질 부분이다. (출처: https://www.oma.com/) 프랑크 푸르트 건축 박물관에 전시 되었던 믈렁-세나르 도시 계획 모델. 대담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렘 콜하스는 아쉽게도 이 공모전에서 2등에 머무른다. 짓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을 계획한다는 명제가 가진 모호함이나, 보이드 영역의 실제 위치가 맞지 않는다는 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송도 신도시 계획 공모전에 당선되며 비슷한 전략을 시험해 볼 기회를 얻는다. 믈렁-세나르와 마찬가지로 송도의 도시 개발은 수많은 변수가 놓인 지뢰밭 같은 곳이었다. 그가 예측 한 대로, 송도의 도시 계획은 경제 위기와 개발사, 당국, 기타 기업 및 시민들의 각기 다른 관심사로 인해 부침을 겪으며 끝도 없이 수정되었고, 이제는 건축가 본인도 내세우지 않는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또 계획했었던 완공 시점이 20년이 넘은 지금도 도시는 여전히 미완성이며 완공 될 날은 아직도 까마득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송도를 보면, 센트럴 파크를 비롯해 렘 콜하스가 계획했던 보이드 공간이 여전히 건재하고, 그가 그렸던 마스터 플랜의 큰 틀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통했던 것일까? 시간이 더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Böck, I., 2015. Six Canonical Projects by Rem Koolhaas. Hall, P., 2014. Cities of tomorrow: an intellectual history of urban planning and design since 1880. Fourth edition. Hoboken, NJ: Wiley-Blackwell. Koolhaas, R., 1995a. Imagining Nothingness. In: R. Koolhaas and B. Mau, eds. S,M,L,XL. 198–203. Koolhaas, R., 1995b. Surrender. In: R. Koolhaas and B. Mau, eds. S,M,L,XL. New York: The Monacelli Press, 972–989. Koolhaas, R., 1995c. What Ever Happened to Urbanism? In: K. Rem and B. Mau, eds. S,M,L,XL. 958–971.
짓지 않기의 건축, 라카통 바살
건축과 2학년 시절, 우리는 설계 수업에서 모두 종로구 어딘가의 땅을 정해 그 땅에 어떤 가상의 건물을 설계해야 했다. 나는 수송동 어딘가에 몇 시간을 서성이며, 사진도 찍고 끄적거리기도 했다. 여기에 도대체 뭘 지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임시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작은 삼각형 모양의 땅이었다. 사람과 건물로 꽉 시내에서, 비록 주차장이라 할지라도 비어 있는 공간은 참 매력적이었다. 몇 번을 방문해도 느낌은 비슷했다. 이곳에 무엇을 짓더라도, 비어 있는 것보다 못할 것만 같았다. 학교 설계실에 모이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어떤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는 건축가의 과제를 맞닥뜨린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짓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그 땅에 건물을 짓는 것이 내가 건축과에 온 이유이자 설계 수업을 듣는 이유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꼭 직업의 본질과 사명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게으름이나 아이디어와 영감의 부족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이러한 우리의 고민이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더 경험 많은 건축가들에게도 절실한 생각이었다는 건 한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짓지 않는 것도 건축가의 일이 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 들리는 이 질문에 2021년에 프리츠커 상을 받은 프랑스의 건축가 듀오 라카통 바살 Lacaton Vassal은 명확한 답을 내준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당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어떤 치료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충분히 관찰하고 정확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종종 답이 되기도 합니다” “When you go to the doctor, they might tell you that you’re fine, that you don’t need any medicine. Architecture should be the same. If you take time to observe, and look very precisely, sometimes the answer is to do nothing.” 의사가 치료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우선 진단을 내리는 전문가라는 것, 또 누구도 과잉 진료는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대로도 좋다’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 역시 건축가의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1996년에 레옹 아우콕 광장 Place Léon Aucoc의 개선사업에서 이들은 실제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음’이라는 설계안을 제출했다. 40년간이나 연임한 전 시장에 뒤이어 임명된 보르도 Bordeaux 의 새로운 시장은 혁신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새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대개 그렇듯 일단 무언가를 짓고 싶어 했다. 시에서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도시환경 개선사업 같은 것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광장 미화 사업에 라카통 바살을 불러들였다. 아마 시에서는 당국의 투자와 의지를 한눈에 보여줄, 새로운 디자인의 벤치나 바닥 포장 같은 성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레옹 아우콕 광장. 현재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출처: https://www.lacatonvassal.com/) 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광장을 처음으로 방문한 두 건축가는 광장이 이미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손댈 곳은 없어 보였다. 광장은 건축적으로 아름다웠고,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울렸으며 무엇보다도 활기차게 잘 쓰이고 있었다. 이미 아름답고 좋은 공간을 보았을 때 건축가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넉 달이 지나 시가 받은 것은 기대했던 새로운 광장의 설계안이 아니라, 광장이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다는 보고서였다. 넉 달의 작업 기간 동안 두 건축가는 그곳에서 받은 첫인상과,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잘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광장을 조사했다. 광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관찰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광장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디자인이 아니라 약간의 유지 보수 정도였다. 보고서에는 광장의 자갈을 교체하고, 조금 더 자주 청소하고, 가로수를 돌보는 정도의 간단한 유지작업이 포함되었다. 심지어 낡아서 못 쓰게 된 벤치도 새로운 디자인의 벤치로 교체하지 않고, 시에서 이미 재고를 보유하고 있던 같은 모델의 벤치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광장을 새로 짓는 데 쓰일 사업비가 어떻게 주변 동네에서 나무를 다듬고, 정원의 자갈을 교체하고, 상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것 등의 정비에 장기간 사용될 수 있는지도 제안했다. 당연하게도 이 보고서에 몹시 당황한 시 공무원들은 계획을 처음에는 거부했다고 한다. 당국은 어쨌든 광장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 보이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설계안은 받아들여졌고, 또 (중요한) 설계비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보고서가 결국은 받아들여지고 또 심지어 설계비도 받았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두 건축가의 선택은 한편 무척 럭셔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에게도 건축가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작업을 쌓아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라카통바살은 설계사무실을 낸 지 10년을 맞이해 조금씩 그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고, 지어진 프로젝트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광장을 ‘있는 그대로 두기’는 어찌 보면 꽤나 비장한 각오나 선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 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어떤 반항이나 건축을 부정하려는 그런 거창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베르사유궁 같은 건축을 보면서 무언가를 바꾸거나 새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아우콕 광장도 시대와 스케일이 다를 뿐이지, 같은 선택이었다고. 건축가가 좋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미 좋은 공간을 지키는 것도 건축가의 일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확립하고 실천한 ‘우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며 때로는 짓지 않을 수도 있다’는 태도는 이후로 다른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중요한 바탕이 된다. 부수지 않고 (never demolish), 없애거나 바꾸지 않으며 (never remove or replace) 항상 더하고 (always add), 변화시킨다(transform and revise)는 이들의 태도는, 적은 예산으로 널찍한 생활공간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주거 프로젝트, 현장의 나무와 자연을 그대로 살리는 설계 방식, 또 기존 건물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여러 재생 프로젝트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이 두 건축가는 주거와 문화시설, 교육시설 등 다양한 스케일과 주제의 프로젝트로, 자신들의 접근법이 결코 비주류적이거나 대안적인 무엇인가가 아니라 본질적인 태도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Huber, D., 2015. David Huber on Architecture of Lacaton Vassal. Beyond relief. Lacaton, A., 2003. We don’t believe in Form. Oris, 13. Lacaton, A. and Vassal, J.-P., 2015. Freedom of Use. Cambridge, MA: Sternberg Press. Wilson, R., 2013. Not Doing/Overdoing: ‘Omission’ and ‘Excess’ – Lacaton & Vassal’s Place Léon Aucoc, Bordeaux, and Construire’s Le Channel, Scène Nationale de Calais, Calais. Architectural Design, 83 (6), 44–51.
건축 안하기가 아닙니다
작년 초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 분도 못 걷고 주저앉을 만큼 체력이 약해졌다. 대학병원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지난봄, 이런저런 검사 끝에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열은 여전히 내리지 않았고 몸은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며 좀처럼 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을이 다 되도록 현대의학에서 별 답을 못 찾은 나는 전통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의사 선생님이 진맥을 해보더니 내 건강은 건물로 말하자면 지하 2층쯤 된다고 말했다. 조바심이 났다. “요가를 하면 도움이 될까요? 어떤 운동을 해보면 좋을까요? 기 수련이나 명상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젊은 한의사 선생님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뭘 자꾸 하려고 하지 말고 뭘 하지 않는데 좀 익숙해져 보세요.” 뭘 하지 말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서 헛웃음마저 나왔다. 뭘 안하는 게 해결책이 될 때도 있는 걸까?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는 내가 언제나 뭔가 일을 벌이고 새로운 건수를 찾아 헤맨다고 얘기했었다. 뭔가를 해야 몸이 더 좋아질 것 같은데, 뭘 하지 않는 것은 어쩐지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고 이는 익숙한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아플 때도 마찬가지라 불안함과 조급함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계속 이런저런 운동이나 새로운 거리를 찾아 헤맸다. 약도 먹고 침도 맞으러 다니며 나는 의사 선생님이 말한 뭘 하지 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말은 무언가를 계속 더 하기만 하는 것이 언제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파서 힘이 없을 때 억지로 새로운 운동 같은 걸 하기보단 몸을 잘 쉬게 하며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자꾸만 뭔가를 해야 할 것처럼 느끼는 버릇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나는 뭔가를 하는 것 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내 버릇이 내가 사는 세상의 논리와도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쉽게 믿곤 한다. 이러한 논리는 건축이나 도시설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더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새로운 건물, 새로운 도시 계획, 새로운 마스터 플랜, 또 새로운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이런 식의 성장과 개발유일한 답이 될 수 없다고 마지못할지언정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환경을 보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더 분명히 다가온다. 예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새로운 버섯이나 벌레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술도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지 못하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또 전 세계 탄소배출의 8%를 차지하는 콘크리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탄소 저감 콘크리트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공사나 건설을 계속한다면 어떤 탄소 저감 기술이나 친환경 기술을 사용한들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지 못하지 않을까? 그러니 ‘뭘 좀 하지 않는 것’, 즉 생산하지 않고 짓지 않는 것이 더 간단한 답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고, 지금으로선 개인이나, 기업, 국가에게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말이다. ‘하지 않는 것’은 단지 휴식이나 방치, 게으름을 의미하진 않는다. 생산, 개발, 성장을 위한 활동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속하지 않는, 흔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돌보고 유지하고 길러내는 일은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힘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일들을 위해 집안을 돌보는 누군가, 공원을 돌보는 누군가는 언제나 열심을 다해야 한다. 또 때에 따라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엇인가가 자신의 의지대로 성장하고 뜻을 펼 수 있도록 조용히 관찰하고, 필요한 공간과 자유를 주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의미 있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고 음악이 되려면 음 사이의 정적도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장자가 말한 쓸모없음의 쓸모랄까? 앞으로 써보려 하는 글들은, 이렇게 ‘하지 않기’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이다. 이는 단순하게 짓는다 혹은 짓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선택지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음으로써 정의 되는 건축가의 일이, 어떻게 관찰하고, 돌보고, 그대로 두고, 함께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가 살펴보는 일이다. 하지 않기는 우리가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성실함이 필요하다. ‘하지 않기’는 사실 도시 재생과 탈성장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오가는 지금 시대에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한의원을 다니고 있고, 뭘 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그러니 지금은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다.